성형수술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형수술이란 말은 그리스어로 성형을 뜻하는 ‘plastikos’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3000년 이집트에서 코 골절과 같은 안면 외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면서 가장 초기의 성형수술은 시작되었다. 죽은 후에도 얼굴의 변형없이 동일해야 사후세계에서도 얼굴을 알아볼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이집트인의 믿음에서 기인한 죽은 자들을 위한 절차적 수행이었다. 람세스 2세 미라의 코는 작은 뼈와 씨앗을 삽입하여 외과적으로 보강한 것으로 살아있을 때 그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이 내세에서도 인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성형 수술의 가장 초기 기록은 600년에서 400년 사이 뺨에서 이식된 피부를 사용하여 귀 볼을 재건하고, 이마를 사용하여 코를 복구하는 절차를 기록한 Sushruta의 텍스트다. 이 무렵 인도에서는 형벌로 잘려진 코를 복원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여기에는 코 재건을 위해 “부착 피판” 기술을 사용하는 코 성형술의 초기 버전에 대한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 기록에 포함된 절차에는 피부이식에 관한 내용과 치료하는 동안 비강을 열어두기 위해 콧구멍에 두 개의 나무 튜브 삽입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16세기 미용 성형수술의 성장은 유행성 매독 때문이었다. 이 시기 성형수술은 매독으로 인한 코의 무너짐을 가리기 위해, 주홍 글씨가 되어버린 처벌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그리고 간통한 아내에게 분개한 남편이 아내의 코를 물어뜯어 이를 복원하고 교정하기 위함이었다.
16세기 말, 이탈리아 외과 의사로 성형수술의 선구자 Tagliacozzi는 무장한 남성들이 거리에서 결투를 벌인 결과로 인한 안면 손상을 복구하고 매독으로 인한 코의 손상을 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외과적 기술을 개발했다. 그의 혁신 중 하나는 팔에서 피부이식 편을 가져와 코에 붙이는 것이다. 신체적 질병이나 피해가 처벌이라는 오래되고 널리 퍼진 믿음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Tagliacozzi의 작업은 재건 및 심미적 목적을 위한 성형수술 사용의 첫 번째 분기점이었다. 1798년 Pierre Joseph이 기형 교정 또는 기능 결손을 위한 수술에 대하여 ‘모양을 잘 만드는’이라는 그리스어 ‘plasyicos’ 로부터 유래된 성형수술(plastic surgery)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19세기에 이르러 성형수술(plastic surgery)이라는 용어가 대두되었다.
현대적인 성형수술의 기원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는데 전쟁의 피해로 인해 무너지고 잃어버린 얼굴의 부분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였다. 전쟁에서 턱이 부러지고 코가 날아가고 심각한 화상, 턱 등 일부 얼굴 부위가 절단되는 등 심한 안면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 귀환하면서 전쟁 생존자의 손상을 복구하는 수술이었다. 하지만 성형수술을 누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제가 없고, 표준 기준도 없었기 때문에 치료가 지체되어 많은 환자에게 심각한 합병증과 흉터를 남겼다.
1차 대전은 재건성형(plastic surgery)에서 미용성형 (cosmetic surgery)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분기점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외과 의사들이 미국 성형외과학회를 결성하고, 1931년에는 미국 성형재건외과학회가 가맹하여 규제되지 않은 성형외과가 종식되고 독립산업으로 인정받는 성형외과의 시작을 알렸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항생제의 사용으로 정교한 미용 성형수술이 가능해졌다. 성형외과는 산업의 합법화를 목표로 하는 전문 조직의 발전으로 ‘전후 붐’을 이루었다. 그러나, 종전으로 인해 손상 복구를 위한 수술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에 외과 의사들은 환자를 만들기 위해 특정 인구 통계학적 대상을 상대로 수술 절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자녀가 성장하고 자녀가 없는 중년의 중산층 여성이었다.
전쟁 이후 미국의 경제적 성장으로 중산층은 성형수술의 표적이 되었는데, 그들의 안정된 경제적 여유에 더해 문화적 이상으로서 젊음,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와 부합하였기 때문이다. 군인들의 손상을 복구하는 치료의 기술과 함께 발달한 의료기술이 더해지면서 성형수술(plastic surgery)에 “cosmetic” ,“aesthetic” 등 미적인 목적을 의미하는 칭호가 붙었다. 이로써 재건성형 (plastic surgery)과 미용성형(cosmetic surgery)은 구분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마케팅 기술과 성형 기술의 발전은 미용 성형수술의 역사에 크게 이바지했다. 1960년대까지 성형수술은 의료계에서 자리를 잡았고, 그 이후로 대중에게 인기가 높아졌다. 여성 몸의 결함을 지적하고 외과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성형 광고의 전략은 미국의사협회(AMA)의 규제 완화와 상업화로 인해 가능해졌다. 1970년대 후반, 성형수술에 대한 마케팅 및 유료 광고들은 1982년 연방 무역위원회의 대법원의 판결로 더욱 합법화되었다. 1990년대 이후 제약 산업의 규제 완화로 성형수술은 대중화되었다. 또한 생화학 화합물 및 합성 물질인 실리콘, 모조 콜라겐, 희석독소 같은 제품에 대한 개발과 승인은 성형수술이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 환경적 요소였다.
신체를 상품으로 규정하는 데 있어 문화적, 경제적, 기술적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다. 의료기술의 확장, 외모와 신체 건강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자유 의지와 문화적 열풍, 일종의 자기개발 수단으로 삼는 성형수술 마케팅 전략은 여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성형수술의 일반화와 ‘자기관리’의 연관성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광고는 여성의 신체가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으며 결함을 메꾸어 주는 성형 수술은 일종의 사회적 통화로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조장했다. 다시 말해, 성형수술은 손상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체 부위를 복원하고 치유하는 의학적인 치료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성형수술을 자기 개선의 수단 또는 단순히 “자연스러운” 신체 회복의 수단으로 규정하는 마케팅 전략은 많은 여성이 성형 수술에 부여하는 개인적인 의미에 크게 영향 미치면서 성형산업은 더욱 확장하였다.
'건강하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부의 구조와 한국 여성의 피부 특성 (0) | 2023.08.29 |
---|---|
한국의 성형외과 발전과 성형수술의 실태 (0) | 2023.08.29 |
성형 중독에 빠지게 되는 이유 (0) | 2023.08.29 |
에너지음료 라고 불리는 고카페인 음료가 위험한 이유 (0) | 2023.08.28 |
녹차마시면 얻을 수 있는 효과. 탈모예방, 아토피 완화, 체중조절 등 (1) | 2023.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