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골프도입은 19세기 후반에 고종이 즉위한 시기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은 각국의 개방 요구로 외교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그 중 운요호 사건으로 강화도 조약을 맺어야 했고, 그 결과 원산항이 개항되었다. 이 원산항의 세관 관리인으로 영국인들이 고용되면서, 그들이 유목산 중턱에 간이 골프장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일본 최초 골프장인 고베의 록코산코스보다 몇 년은 앞서 건설되었다.
한국골프는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에 개장한 청량리 골프코스에 한국인 골퍼가 등장하였으나, 코스가 너무 좁고, 짧았다. 부지 10만 평은 9홀밖에 짓지 못하는 크기다. 홀 수는 16개였고, 1, 2번 홀을 2번 돌아 18홀을 채우는 방식으로 모든 거리를 합쳐도 전장이 4,000야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1929년 개장 예정었으나 잔디의 식재문제로 1930년에 개장한 한국 최초의 18홀 정규코스인 군자리 골프코스(현, 광진구 소재 어린이 대공원)가 있었다.
군자리 골프코스는 1941년 태평양전쟁시기 군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가 1950년 복원했지만, 또다시 6.25 전쟁으로 파괴되었으며, 전쟁이후 파72의 현대적 코스로 복원되었다. 그러나, 도시공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군자리 코스를 패쇄하고, 어린이 대공원으로 변경했다.
6.25 전쟁이후 1954년 서울컨트리클럽의 개장과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가 개최되면서 한국 남자 골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서울컨트리클럽은 대한골프협회 창립 이전까지 아마추어골퍼 양성을 위한 각종 골프대회를 개최하며 골프의 저변확대를 도모하였다.
1965년 창립된 한국골프협회는 국내 골프를 대표하는 공식기관으로 초창기 아마추어와 프로골퍼를 육성하는데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1982년에 골프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본격적인 선수육성정책과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 채택을 계기로 골프가 제도권에 진입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프로골퍼인 연덕춘이 프로양성을 시작하면서 1958년 창설된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KPGA Championship)와 한국오픈(Korea open Championship)은 한국에서 프로골프대회의 시작이 되었으며, 1963년 결성된 프로골프회는 1968년 한국프로골프협회의 창립계기로 프로골프 시대를 맞이했다.
이처럼 1950년부터 1969년은 대학 골프부 창단, 대학 골프수업 실시, 한국 대학생골프회 조직 등으로 대학스포츠로서 정착되어 가던 시기였다. 그리고 서울컨트리클럽의 부인회의 결성은 여성회원들의 친목도모 뿐만 아니라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당시 골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하였다.
1970년부터 1989년은 골프관련 기관들의 대회 창설로 한국 여자아마추어선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연령층 또한 중장년층에서 청소년층으로 변화되어 학원스포츠로 정착되기 시작하였으며, 여성골프는 1978년 처음으로 구옥희가 여자프로골프선수로 일본으로 진출했다. 구옥희는 JLPGA투어와 USLPGA투어에서 한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우승하여 한국여성 골퍼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한국의 골프는 1980년대 이후 최상호, 강욱순, 김종덕 등과 1990년대 이후 최경주, 양용은, 노승렬, 배상문 등이 PGA에 진출하여 활동하였고, 여성선수로는 구옥희가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여자프로골프를 개척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박세리가 LPGA 25승의 전적으로 한국 골프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8년부터 한국프로골프 선수들이 해외무대에서의 많은 우승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골프강국으로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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