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정보

청첩장은 축하의 시작인가, 계산의 출발선인가

by howto88 2026. 1. 28.
반응형

결혼 준비의 출발점인 청첩장은 더 이상 신랑·신부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이 한 장, 모바일 링크 하나를 매개로 가족과 친구, 지인, 나아가 ‘관계의 값’을 계산하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축하의 언어로 포장된 청첩장은 어느 순간부터 부담과 긴장의 신호가 됐다.

최근 결혼을 준비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청첩장을 둘러싼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부모 지인을 위한 ‘혼주용 청첩장’을 따로 제작할 것인지, 축의금 계좌번호를 누구 명의로 넣을 것인지, 사진 노출 수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가 논쟁의 대상이 된다. 청첩장은 더 이상 날짜와 장소를 알리는 안내문이 아니라, 가족 간 권력관계와 세대 간 가치관 차이가 집약되는 상징물이 됐다.

 

청첩장 사진을 둘러싼 갈등은 특히 상징적이다. 신랑·신부의 개성과 취향을 담고자 한 사진이 ‘노출’ ‘경솔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수정 대상이 되는 순간,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집안의 행사로 다시 환원된다. 그 결과 ‘어른들용’과 ‘친구용’을 분리 제작하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 하나의 결혼을 두 개의 시선으로 나누는 풍경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청첩장을 직접 전달하는 ‘청모(청첩장 모임)’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축하를 받기 위해 밥을 사고 술을 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신랑·신부는 주최자이자 계산자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예의지만, 누군가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관행이다. 청모 이후 관계가 멀어졌다는 경험담이 이어지는 이유다.

 

이 같은 피로감은 결국 반작용을 낳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축의금을 ‘되돌려 받는’ 노웨딩 청첩장, 비혼식을 예고하는 문화가 등장했다. 축의금을 축하가 아닌 ‘품앗이’로 인식하는 시각이 확산되면서, 관계는 감정이 아니라 정산의 대상이 된다. 결혼식에 밥을 먹고 축의금을 냈으니, 언젠가 돌려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청첩장을 둘러싼 갈등은 개인의 예의 문제나 세대 차이로 치부하기 어렵다. 결혼이라는 통과의례에 과도한 비용과 관계 관리가 요구되는 구조, 축하가 의무와 부담으로 전환된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의 본질이다. 축하의 자리가 계산서로 변하는 순간, 결혼은 더 이상 기쁜 시작이 아니다.

 

 

청첩장은 원래 “와 달라”가 아니라 “알린다”는 의미였다. 축하가 부담이 되고, 관계가 손익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결혼 문화는 이미 길을 잃고 있다. 청첩장을 다시 축하의 언어로 돌려놓지 못한다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점점 더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반응형

 

반응형